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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별이 될래요! - 울산 현대 이진호②’

작성자 : root작성일 : 2008-05-30 13:24:12조회 : 20443

‘울산의 별이 될래요! - 울산 현대 이진호②’

공설 운동장에서 울산현대를 외치며 응원하던 꼬마가 이젠 울산현대의 이진호(25,울산 현대)가 되어 유니폼을 입고 꿈에 그리던 그라운드를 누비었다.
용기와 패기는 여느 선수 못지않은 그였지만, 단번에 계단을 뛰어 오르기 힘들 듯이 그도 당장 프로에서의 활약보다는 2군에서부터 천천히 실력을 쌓아갔다.
처음이라는 단어는 설렘을 포함하는 참 묘한 단어가 아닐까. 이진호, 그에게도 처음이라는 단어는 벅찬 감격과 설렘을 가진 단어이다. 프로에서의 첫 경기....... 그에게 처음이란 단어의 의미를 다시 일깨워준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프로 첫 경기...... 2003년도였어요. 거짓말 안하고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아요. ^^;;;
안양LG치타스(현 FC서울)와의 원정경기였어요. 울산이 선제골을 넣고 앞서고 있었는데, 안양이 만회골을 넣으면서 1:1 상황이었죠.
전반에 교체되어서 들어가려고 기다리는데, 설렘, 흥분, 감동, 걱정, 떨림, 부담, 긴장, 여태까지 내가 축구하면서 있었던 일 등등...... 그 모든 감정과 생각들이 한꺼번에 떠올랐어요.
제가 뛰긴 뛰었는지, 올바르게 뛴 건 맞는지, 기억나는 거라곤, 유니폼은 입고 뛰었다는 것 정도랄까요?(웃음)
전반에 교체로 들어갔다가, 후반에 다시 교체되어서 나왔어요. 기억은 나지 않지만, 너무 긴장한 나머지 감독님이 원하는 만큼 뛰지 못한 것 같아요. 그 정도예요.(웃음)”
꿈꿔오던 프로 첫 경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기에는 아직 그는 여린 선수였다. 하지만 첫 프로 경기를 계기로 그는 자신감을 잃기 보다는 좀 더 많은 관중들앞에서 자신의 숨은 잠재력을 보여주기 위해서 더욱 훈련에 매진하였다.
축구화의 끈을 단단히 묶은 이진호는 그 자신이 가진 잠재된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더욱 운동장에서 땀방울을 흘리며 노력했다. 하지만 신은 그에게 좀 더 강해지길 원하셨다.
열심히 노력한 그였지만, 2004년도 그는 프로경기에 단 3번밖에 출장하지 못하였다.
비가 온 뒤 땅은 더욱 단단해 진다는 옛 어른들의 말은 아마 그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2004년도의 저조했던 성적표는 2005년 그의 활약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다.

“2003년도, 2004년도에도 주위 분들이 기대하셨던 만큼 활약을 보이지 못했어요. 그래서 동계 훈련 때 마음을 다잡았어요. 노력하는 길밖에 없다고요.
2005년도 프로에서 첫 골도 터졌어요. 삼성 하우젠 K리그 2005 성남과의 원정 경기에서 종민(이종민 현 FC서울)이 형이 오른쪽에서 올린 크로스를 제가 골로 연결했어요.
그리고 수원과의 홈경기에서 홈 데뷔 골도 넣었어요. 2005년도는 울산 팬분들, 처용전사, 구단 관계자 모든 분들에게 잊지 못할 한해이고, 저도 그래요. 정말 잊지 못할 한해를 보냈어요.”
삼성 하우젠 K리그 2005의 플레이오프를 끝으로 그는 대한민국 건장한 남성이라면 수행해야할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팀을 잠시 떠나야만 했었다. 극적인 역전골로 팀을 챔피언 결정전으로 올려놓은 그, 꿈에 그리던 챔피언 결정전에서 함께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아쉬움, 가족 같은 팀을 떠나야 된다는 사실에 탄천에서 눈물을 쏟아 낼 수밖에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군에 입소한 이진호. 불행 중 다행일까, 그는 쇠골과 왼쪽 발에 피로 골절이라는 진단을 받으면서 다시 울산으로 돌아오게 된다.

“사실 피로 골절은 선수 본인이 잘 느끼지 못해요. 저도 그랬어요. 몸은 괜찮은데, 집에 가서 쉬라고 군에서 보내주는데, 챔피언 결정전을 뛰고 싶다는 욕심이 났어요. 못 뛸 정도로 아픈 것도 아니었고, 정말 뛰고 싶다는 마음 하나뿐이었어요.
김정남 감독님께서 저의 이런 마음을 아셨는지, 챔피언 결정전 후반에 저에게 뛸 기회를 주셨어요.
축구선수가 우승 트로피를 만질 수 있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경기를 뛰고 땀에 젖은 유니폼을 입고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출 수 있었던, 정말 저에겐 행운 그 이상이에요.”
꿈에 그리던 챔피언 결정전에서의 감동을 가지고 그는 가족 같던 울산을 떠나 광주상무에 입대하게 된다. 2003년도에 입단해서 이제 울산에서 자리를 잡아가던 그였기에 더욱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군대를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어요. 활약도 좋지 못했고, 심적으로 힘들었어요. 어차피 가야되는 군대, 젊을 때 가는 것이 좋지 않겠나 싶어서 마음먹고 있었어요. 이제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 같은 생각에 아쉬움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래도 이왕 가야되는 군대, 즐겁게 가려고 노력했어요.
광주에서는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어요. 재활도 생각만큼 잘되지 않았고, 광주에서도 아쉬움이 많아요.
부상 때문에 경기를 많이 뛰지는 못했지만, 저만의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었어요. 그래서 더욱 나를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여태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뒤돌아 반성할 수 있었고, 외적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내적으로는 더욱 성숙할 수 있었어요.”
2005년도의 상승세를 가지고 모든지 잘 될 것 같았던 그였지만,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남들이 봤을 땐 잃은 것이 많아보였던 광주에서의 생활,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더욱 성장하였다.
2년이라는 짧지만 긴 시간. 그는 다시 울산으로 복귀하였다. 광주에서의 활약이 좋지 않았기에 울산으로 복귀는 즐거움이 가득했지만, 마음 한곳의 부담은 감출 수 없었다.
“울산으로 복귀하고, 동계훈련에 참여할 때 오로지 ‘잘해야 된다’란 생각보다는 최상의 몸, 최상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무조건 ‘개막전은 출전할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훈련에 임했어요. 그리고 동계훈련에서 준비한 것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어요.
다행이 서울과의 개막전경기에서 (오)장은이의 골을 어시스트 했는데, 그때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제 개인적 공격포인트를 올려서 보다는 팀이 지고 있는 상황에서 제가 팀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 너무 감격스러웠어요.”
손꼽아 기다리던 개막전, 그리고 그의 활약에 울산은 원정이라는 부담감이 있었던 개막전이었지만, 울산은 승점 1점을 챙겨오며 삼성 하우젠 K리그 2008를 시작하였다.
이진호가 이진호를 말하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타고난 체격을 가진 이진호. 그에게 축구는 숙명이었다. 그래도 만약, 그가 축구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 쯤 무얼 하고 있을까.
“축구를 안했다면, 글쎄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저에게 축구는 가족이에요. 아버지, 어머니, 나, 동생, 그리고 축구, 이렇게요.
그리고 저에게 있어서 축구는 삶의 조언자예요. 축구는 저에게 삶의 재미도 느끼게 해주고, 돈을 벌게 해주는 저의 직업이잖아요.
아, 그리고 축구는 이게 매력인거 같아요. 11명이서 함께, 경기 시작 전엔 잘해보자면서 서로에게 힘을 주고, 경기가 끝나고서는 서로를 격려해주면서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잖아요.”
그에게 축구를 떼어놓고 생각하기엔, 이미 축구는 그에게 삶이자 가족이었다. ‘축구를 안했으면 무얼 했을 것 같으세요?’라는 질문에 축구 예찬론을 펼치던 그. 그래도 핫 피플 기사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질문이기에 그의 대답을 재촉하였다.
“아마도 집을 짓지 않을까요. 제가 손재주가 많아요. 그래서 아마도 무언가를 만들면서 지내지 않을까요.(웃음) 아! 만드는 것보다는, 만든 걸 누군가에 선물하는 걸 더 좋아해요. 제가 정성스럽게 만든 걸, 상대방이 받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더욱 기쁜 마음이 들어요.”
자신이 만든 물건이 상대방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것을 더욱 좋아하는 마음 따뜻한 이진호. 살아가면서 남을 생각하기는 오히려 쉽지만, 가까이에서 항상 같이 있기에 소홀해 질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가족일 것이다. 그는 그런 오류를 범하고 있진 않을까.

“중학생인 남동생이 있어요. 운동이 없는 날이면 동생이랑 영화도 보러 가고 맛있는 것도 자주 먹으로 다녀요. 여기 울산클럽하우스에서 저희 집까지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위치 해 있어요. 그래서 집에 가는 것이 쉬워서 가족들이랑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해요.
동생이랑 나이차이가 나는 편이라서 그런지 제가 장난도 많이 치지만, 멋진 형이 되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생이 학교에서 울산에서 뛰고 있는 이진호가 형이라고 자랑도 많이 한다고 해요.^^
어렸을 때 집안 사정이 많이 여유롭지 못했어요. 그래서 두 분 다 일을 하셨어요. 그렇다보니 어린 나이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그 덕분에 합숙 훈련 같은 것이 더욱 즐거웠어요. 집은 조용한데, 합숙소는 친구들이 많고 시끌벅적하잖아요. 어린나이에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없어서 그때 당시에는 섭섭한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 이해해요. 그리고 오히려 어려운 형편에 제 뒷바라지 해주신다고 고생하신 것이 죄송하면서도 감사해요.”
무뚝뚝해 보이는 첫인상과는 다르게 그는 따스함 가득한 목소리로 질문에 응해주었다. 그리고 가족을 떠올리며 말을 이어가는 그의 모습에서 한 가정의, 한 여자의 멋진 남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아직 교제하는 여자 친구가 없어서, 남자로써 저를 잘 모르겠어요.^^ 결혼은 은퇴 전에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은퇴 후에는 저의 반려자와 의류 사업을 하고 싶어요. 제가 패션이나, 액세서리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은퇴 후에 의류사업을 해보고 싶단 생각을 많이 해요.
사실, 지금 이렇게 말하지만 은퇴 후에 무언가를 딱 하겠다 라고는 단정 지어본적은 없어요. 그때가 되어봐야 알 것 같아요. 지도자를 생각하기도 했었고,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제 새로이 달려 나가는 이진호. 그에게 은퇴 후를 묻기에는 아직 보여주지 못한 그가 많다. 그의 숨겨진 능력을 오랫동안 그라운드에서 보길 바란다.
어릴 때부터 주목을 받은 그. U-16세 이하 청소년 대표로 활약한 그였다. 어린 나이였지만, 한 나라를 대표했던 그. 모든 축구 선수라면 태극마크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
“막연히 재밌었어요.(웃음) 대표팀 선발이라는....... 머랄까요. 작은 도시 울산에서 우리나라의 대표가 되었다는 건 영광이잖아요. 쉬운 일도 아니고요.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그때 대표팀을 계기로 더욱 성장했어야 되는데, 성장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쉬워요.
좀 더 그때 발전 하고, 성장했다면 지금의 이진호는 더욱더 멋진 선수가 되었을 거라 생각해요.
운동선수라면 누구 던지 가슴에 태극 마크를 다는 것이 최고의 꿈일 거예요. 저도 그렇고요. 지금 당장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서 뛰기보다는 지금 현재 울산에서 최선을 다해서 뛰다보면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해요. 아, 울산에서 최선을 다해서 뛰는 이유가 국가대표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아니에요. 지금 내가 해야 될 일은 울산을 위해서 뛰는 거니까요. 좋은 활약을 보이면 국가 대표 자리는 자연스레 따라 올 것이라 생각해요.”
자신의 태극마크보다는 올해 울산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해서 또다시 정상 등극을 하길 원하는 그였다. 그리고 아직 다 보여주지 못한 그의 숨은 능력을 올해는 꼭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이진호.
“올해 목표는 울산이 플레이 오프에 진출하는 거예요. 그리고 또다시 우승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겁니다. 저 혼자 우승을 한다고 해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울산 모든 선수들이 올해 또다시 챔피언의 자리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고, 열정이 가득하기에 좋은 결실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득점왕도 탐나는 자리에요.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나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한다면 도전 해볼 만한 자리라 생각해요.”
2005년에도 그와 함께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울산. 그때의 영광을 또다시 2008년 올해도 그와 함께 챔피언의 자리에 올라서길 바란다.

“아직 경기장에서 저의 모든 것을 보여드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더욱 발전하는 이진호의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경기장에 많이들 오셔서 우리 울산을 더욱 응원해주세요. 또다시 여러분과 함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싶습니다.”
K리그 명예 기자 장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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