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호준의 플레이는 미드필드의 새로운 축을 만들었고, 김승규의 선방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데 일등공신이였으며, 김성민의 종료직전 결승골은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지난 시즌 현영민, 오장은, 염기훈 등등 스타플레이어들이 즐비한 울산에서 새내기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기적 같은 순간들을 만들어왔다. 올해도 다르지 않다. 자신의 발끝에서 울산의 승리를, 기적을 부르고 싶다는 3명의 선수들이 있다.
화려한 코치진, 좋은 시설, 명문 구단 등 울산으로 오게 되어 좋은 점을 말하는 데 무슨 내기라도 걸었는지 끊임없이 쏟아낸다. 설상가상 인터뷰 내내 승부욕에 불타 인터뷰 배틀이 붙어버렸다. “실력 만큼이나 혈기 넘치고 개성 강한 선수들입니다.”라던 인터뷰 전 구단 관계자가 전한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3월, 혈기 넘치고 개성 강한 울산 3명의 신인을 클럽하우스에서 만나보았다.
* 울산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꿈꾸며 - 최진수
울산의 선진화 된 클럽 시스템의 산물로 그를 보면 알 수 있다. 바로 구단 산하 클럽시스템 출신 선수를 확보하는 우선지명을 통해 울산에 입단한 최진수이다.
축구 팬이라면 그의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호초등학교 축구부를 시작으로 해당 연령대의 유소년대표팀에 가장 많은 멤버를 배출한 현대중, 지난 2008년 SBS 고교클럽 챌린지 U-18리그 우승팀인 현대고를 거쳤다. 그리고 U-12세 대표팀 부터 U-14세 주장역할과 함께 U-17세 월드컵 대표팀까지. 그야말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으니 말이다. 특히 U-17 월드컵에 앞선 8개국 대회를 통해서 보여준 그의 활약은 그가 한국축구 미래의 주축임을 확실히 증명했다.
“솔직히 U-17월드컵을 앞둔 한 달이 제일 힘들었어요. 훈련도 힘들었지만 대회가 한국에서 열린다는 점 때문에 잘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너무 컸던 거 같아요. 그 한 달 동안 주변의 기대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어요. 하지만 그만큼 얻은 것도 있어요. U-17 월드컵을 앞두고 치루었던 8개국대회는 힘들었으면서도 기억에 많이 남거든요. 한동안 제가 허리 부상으로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 대회에서 강팀들을 상대로 득점까지 기록하게 되니깐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많이 얻게 되었죠."
그는 나이에 비해 볼 배급력과 패싱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금껏 각 대표팀에서 워낙 출중한 실력으로 인정받아왔다. 하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인해 1년 동안 어머니 몰래 형과 함께 축구부 생활을 시작했다고. 하지만 워낙 축구를 좋아하던 두 아들 녀석에 어머니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어 결국 허락할 수 밖에 없었단다. 어머니의 허락까지 떨어지자 그는 마음껏 실력을 뽐내기 시작했고 현대중에서 그에게 진학 제의가 왔다.
“현대중 감독님께서 처음엔 저 말고 다른 친구를 보러 오셨었데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저를 좋게 봐주셨는지, 저에게도 연락이 왔었죠. 이렇게 좋은 시설에서 즐겁고 축구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친구에게 엄청나게 고마워했어요. 아니, 지금도 그 고마운 마음은 변함이 없어요.”
"현대중, 현대고에서 있으면서 시설뿐만 아니라 프로 선수들과 함께 울산 클럽 하우스에서 생활한 것도 도움이 참 많이 됐어요. K-리그 경기를 직접 관람하고 형들의 플레이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죠. 그리고 형들이 몸 관리하는 법이나 운동하는 법 등 프로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바로 옆에서 보고 들으면서 배울 수 있었어요."
스스로 일찌감치 프로를 접하면서 생활해왔다고 생각해왔지만, 정작 프로에 부딪혀보니 그는 요즘 거대한 장벽을 실감하고 있는 중이란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항상 감독님의 말씀에 따라서 열심히 하면 되었지만, 프로는 스스로 모든 걸 관리해야하니. 이제 막 20살이 된 그에겐 대체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할지가 난감할 따름이다.
“지금 이 순간은 모두가 다 겪었고 또 겪게 될 일이잖아요. 프로 선배 형들이 그랬듯이 저도 잘 헤쳐 나가야죠. 저에게 지금 최우선은 팀이 좋은 성적을 내는거에요. 두 번째는 신인들이라면 누구나 욕심을 내는 신인왕이에요. 프로에 와서 그 정도 욕심 내는 건 당연하다고 봐요. 하지만 이 순서가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팀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한다면 개인적인 부상이야 자연히 따라온다고 믿으니깐요.”
* 저의 축구로 행복하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 김신욱
몇 년간 울산의 수비를 책임지던 박동혁과 박병규가 떠났다. 그리고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새로운 수비라인을 구상하기 위해 울산은 드래프트 1순위로 김신욱, 그를 지목했다. 그의 프로필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196cm의 큰 신장이다. 처음엔 신장만 보고 양동현과 우성용이 빠진 울산에게 새로운 공격자원인가 했더니 그의 포지션은 다름 아닌 수비수.
“포지션은 수비수지만 지금까지 골키퍼 빼고 다 한번 씩 해 봤어요. 공격수로 축구를 시작했는데 초등학교 시절엔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었어요. 그렇게 중학교 때 까지 공격수를 하다가 고등학교 때 부터는 미드필드를 했고 대학교때는 미드필드와 수비수를 번갈아 했어요. 공격수, 미드필드, 수비수. 일명 멀티플레이어죠.(웃음).”
멀티플레이어답게 과천초등학교를 시작으로 과천문원중학교, 과천고등학교까지 그의 활약은 하나하나 나열하기도 어려울 만큼 화려하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창단과 함께 우승을 기록하는 행운아였고 중학교 시절에는 해당연령대 대표팀 명단에 줄곧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무학기 험멜코리아배 전국고교축구대회 우승과 더불에 최우수선수상까지 수상했으니 각 포지션별로 그 활약을 인정받은 셈이다.
“어릴 때 부터 부모님에게 운동의 재능을 물려받아서인지 운동에는 소질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만큼 제가 공부도 잘했거든요. 축구와 공부, 그 사이에서 얼마나 고민했는지(웃음). 그런데, 학교 대표로 수학경시대회에 나갔는데 떡하니 떨어졌죠. 그 순간, 바로 ‘아~ 축구가 내 길이구나.’ 하면서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초등학교, 중학교까지는 정말 잘해왔었어요. U-13세부터 U-16세까지 계속 뽑힐정도였으니깐요. 그런데 다리를 다친 이후로는 급격하게 슬럼프가 오더라구요. 고등학교 1학년 때, 2개월에 한번 씩 다리를 다치더니 그렇게 1년을 보내버렸죠. 그 1년을 쉬면서 키가 훌쩍 컸고 체격도 달라지게 되었어요.”
위기는 기회가 되는 법. 중앙수비로서 큰 신장은 공중장악능력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세트피스 상황에서 헤딩으로 매서운 공격을 이끌 수 있는 강점까지 더하니 그에겐 더없이 특출난 장점인 셈이다. 슬럼프 이후 다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고 결국 중앙대 2학년에 재학 중인 상태에서 드래프트 1순위로 울산에 입단하게 되었다.
“원래는 다른 여러 구단에서 이야기가 오고 갔었어요. 그래도 드래프트는 확실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이런저런 이야기는 많았지만 불안함을 떨쳐 버릴 수는 없었죠. 그래서 드래프트 발표 시간에 기도하고 있었어요. 좋은 결과 있게 해 달라고.
드래프트 현장에는 아버지가 계셨거든요. 전화가 오셨어요. 울산에 1순위로 가게 되었다고. 울산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팀이였어요. 매년 좋은 성적을 내는 팀이기 때문에 더 좋기도 했고 울산이 저를 지목했다니 놀랍기도 했어요. 그저 감사할 뿐이에요.”
“그저 감사하다는 인사로 끝내지는 않아야겠죠. 절 믿고 뽑아준 팀에게 좋은 실력으로 보답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물론 지금 당장은 힘들겠죠. 아직 아마추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으니깐요. 프로에 적응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조급한 마음 없이 차근차근 준비하겠습니다. 그래서 제 축구 실력으로 팬들을 즐겁게 행복하게 만들어 드릴테니 끝까지 지켜봐주세요.”
* 순위는 중요치 않다. 시작은 이제부터 - 최용선
공부보다는 축구가 좋았고, 축구 할 때가 더없이 즐거웠다. 그런 그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아버지가 정식으로 축구의 길을 추천했고, 그는 망설임 없이 그 길을 선택했다. 인천만수북초를 시작으로 제물포중, 축구명문고로 불리는 부평고까지. 자신이 고참으로 있을 때마다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그 승리의 가운데는 그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었다.
“부평고에서 축구하면 축구에 재미가 붙는다잖아요. 그래서인지 부평고에 있을 때 경기들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제가 3학년 때였는데, 그 때 감독님이 강릉농공고고 가시면서 4명 친구들도 함께 따라갔거든요. 그러고 강릉농공고랑 경기가 붙은 거에요. 감독님과 친구들을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단단히 각오를 하고 경기에 나서는데, 무슨 영화에서 결전의 날을 맞이하는 것처럼 비도 내리는 거 있죠.(웃음)
제가 먼저 1골을 넣고 앞서나가고 있는데, 저희 골키퍼와 상대 공격수가 서로 정말 친했던 친구에요. 물론 골키퍼가 실수한 거겠지만, 저희 눈에는 친한 친구에게 골을 넣으라고 볼을 내 준 것 처럼 보였거든요. 그렇게 해서 사이좋게 1대1로 경기를 마쳤어요. 서로 엄청 신경전이 있었을텐데 싸움도 없이 경기를 잘 마쳤죠. 비 때문인지, 제가 골을 넣어서인지 이 경기가 지금도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거 같아요.(웃음)”
부평고를 졸업한 뒤, 전주대에 입학하면서 그에게는 새로운 이색경력이 하나 붙었다. 바로 2005년부터 2007년까지 풋살국가대표팀으로 활동하게 된 것. 그는 꾸준히 각 대회에 출전하며 골을 기록했고 2007 아시아 풋살 선수권 예선전에는 한 경기에서 11골이나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었다.
“풋살은 FIFA에서 공인한 실내 축구인데,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풋살에 대한 인식이 대중적이진 않아요. 외국은 풋살 전문 선수들이 따로 있어서 축구처럼 어릴 때부터 선수를 키워오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풋살 환경은 대체적으로 많이 어렵죠. 그래서 훈련하는 동안에도 시설이나 환경면에서 어려움이 많았어요.”
“풋살과 축구와 비슷하지만 그만큼 다른 점도 가지고 있어요. 먼저 풋살과 축구에서 사용하는 근육들이 각각 달라요. 그러다보니 축구를 하다가 풋살을 하면 어려움이 많이 따르죠. 하지만 풋살을 하다가 축구를 하면 도움이 많이 되요. 대부분 사람들은 풋살이 축구를 하는데 있어서 몸을 망가트린다고 생각하시지만, 그렇지는 않아요. 저는 도움을 많이 받았거든요. 패싱력이나 킥, 그리고 볼처리가 풋살 덕분에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에요.”
그는 풋살 국가대표 출신이라는 이색경력과 함께 패스와 킥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울산의 새로운 MF로 입단하게 되었다. 드래프트 6순위. 프로에서 드래프트 순위가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지만 정작 스스로에게 어쩌면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조심히 그 소감을 물었보았다. 그러나 정작 돌아오는 대답은 긍정과 자신감이 묻어나온다.
“오히려 울산으로 오게 되어서 정말 영광이에요. 저는 어디로든 뽑히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전날 정말 잠이 안오더라구요. 제 축구 인생을 한 번에 결정짓는 일이니 만큼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어요. 그렇게 잠을 뒤척이다가 날이 밝아서는 그냥 운동이나 하자고 마음 먹고 진짜 운동에만 집중했어요. 그리고는 연락을 받았죠. 울산에 가게 되었다고.”
“이렇게 프로에 올 수 있게 된 것만으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 400여명 중 150명 정도가 뽑힌 걸로 아는데, 제가 그 중에 1명인 행운아잖아요. 저는 솔직히 번외지명이라도 상관이 없었어요. 순위가 뭐 중요한가요? 프로에 들어오면 다 똑같이 시작하는 걸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저 나름대로 어려운 일들이 참 많았거든요. 하지만 잘 극복해왔어요. 앞으로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무슨 일이 닥쳐도 지금껏 해온 것처럼 잘 해낼 거라고 스스로를 믿어요. 그러니 제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선보일지 끝까지 기대해주시면서 지켜봐주셨으면 합니다.”
각자 걸어온 길은 다르다. 하지만 프로에 들어온 순간, 그들은 지금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프로와 아마추어. 그 사이에서 세 선수 모두 적잖은 방황을 겪고 있다며 입을 모은다. 물론 프로에 오게 되어 기쁜 마음이 가장 크다. 하지만 프로라는 이름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 따르는 책임과 의무감. 그리고 그 변화의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자신에 대해서 믿는 만큼 자신의 위치도 결정된다고 한다. 프로의 기술을 가졌으면서도 생각이 아마추어라면 그는 아마추어의 자리에 머물게 된다. 기술은 아마추어에 불과하지만 프로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곧 프로가 된다. 시간이 문제일 뿐이다. 아마추어를 벗어던지 세 선수 모두 이제는 프로라는 수식어로 자신을 어떻게 장식해 나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한국프로축구연맹 , K-리그 명예기자 한지원